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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책 추천_소설 추천]밤으로의 긴 여로
    인생 책 2019. 9. 13. 21:49

     

    밤으로의 긴 여로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유진 오닐, 민음사, 2002

     

     

     

    대학교 2학년, 3학년 때였던가 영미희곡 시간에 배웠던 작품. 아.. 그런데 정말 고통스러운 작품이었다. 뭐랄까, 오늘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주루룩 읽었는데 역시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 속에 그 고통이 진하게 전해져온다.

     

     

    제임스 티론과 메리 티론의 부부와 그의 두 아들들 제이미 티론과 에드워드 티론이 그 주인공.

    어머니인 메리 티론은 마약쟁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본인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 가족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가족으로 인한 고통을 안고 있는데, 그것들이 다 얽히고 섥혀서

    가족 전체의 고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중심이 메리에게로 향하고 있는..

     

    메리 티론은 수녀 그리고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던 순수한 가톨릭 신자로서 수녀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당대 최고 미남으로 불리웠던(?) 제임스 티론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둘은 결혼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그녀의 인생이 내리막길을 향하기 시작하는데...

     

    제임스 티론은 메리 티론을 싸구려 호텔에 데리고 다니며, 자신의 연극 순회를 다녔던 것.

    그리고 매번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만 마시다 잔뜩 취해서 아주 늦게 메리에게 돌아오거나 했기 때문에

    메리로서는 그 싸구려 호텔에서, 집 같지도 않은 그곳에서 티론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외롭게 그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첫째 아들인 제이미 티론을 낳고, 그 다음으로 유진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았는데..

    홍역에 걸렸던 7살의 제이미가 그만 부모님의 주의를 무시하고 유진의 방으로 들어가

    아기였던 유진은 죽게 되고.

    이것은 또한 제이미가 유진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그것이 질투가 나서 그랬던 것이라는 메리의 설명도 있고,

    메리도 그 때에 아들들과 함께 있지 못했던 것이 제임스 티론이 그녀를 그립다는 편지를 써서, 잠시 아이들을

    친어머니께 맡기고 제임스 티론에게 가는 바람에...

     

    그래서 이 한 사건만 봐도 서로가 서로를 탓하기도 하지만 또 각자에게 책임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 때문에 각자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그것이 소설내내 계속되는 것..

     

    그리고 그 후 출산한 에드워드는 메리가 유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을 때에 임신하고 출산한 아이인데,

    메리처럼 심약하고 굉장히 예민하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작품 말미에 가서는 작품 초반부에 묘사되었던 그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열심히 읽었던 흔적이 누구의 것인지 드러나는데, 에드워드였다. 그러니까 굉장히 감수성도 풍부하고, 문학도로서도 촉망받았던 것인데 이를 또 제이미는 질투를 하고...

     

    그런데 에드워드는 바로 그 약한 몸 때문에 결국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요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병이 치유될 거란 확신이 없자 가족들 모두가 괴로워 하는 것.

     

    특히 제임스 티론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가족 내에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살아왔던 메리는 에드워드의 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가족들도 메리가 행여나 또 마약을 할까 싶어 앞에서는 쉬쉬한다.

     

    메리가 마약쟁이가 된 이유는, 그것 역시도 제임스 티론에게 있었다. 지독한 구두쇠였던 그는, 에드워드를 출산한 후 몸이 약해진 그녀에게 돈을 이유로 또 싸구려 의사를 붙여주고.. 그 싸구려 의사는 대뜸 메리에게 모르핀? 아마도? 그런 고통을 줄여주는 마약류의 약만을 처방해 주었던 것.

    그래서 그 뒤로 메리는 마약에 중독이 되었던 것이고...

    두 형제는 그 원인이 아버지에게 있음을 알고, 그래서 또 아버지를 끔찍히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희곡에서 드러나는 것이 단지 그런 미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다가도 또 금방 사과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가족들이 다 그렇다 ㅠㅠ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 마음에 내뱉는 말들에 상대를 향한 사랑도 깊이 배여있기에, 그 처절한 고통들이 너무 와닿아서.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어찌보면 가장 큰 원인은 제임스 티론에게 있는 듯 하다. 제임스는 에드워드를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에서조차도 끝까지, 돈의 지출이 크지 않은 한에서 적절한 요양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메리에서부터 아들인 에드워드까지, 자신의 돈에 대한 집착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데도 고치거나 고쳐지질 않는 제임스를 보면, 성장배경에서 겪었던 일들이나 그가 배움을 받아왔던 가정교육이 그에게는 이미 그만큼 굳어져버렸기에,

    쉽사리 변할 수 없는. 그렇게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무조건 잘못된 인간으로 치부되어야 할 것인데, 그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면 그게 또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정말..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가족의 대 비극의 서사시 같았다.

     

     

    그리고 나는 민음사에서 출판된 이 희곡에 수록된, 이 부분도 너무 절절하고 와닿았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타오 하우스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1939년에 이 글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사후 부검 결과 소뇌 퇴행성 질환으로 밝혀진 마비 증세로 손을 제대로 쓸 수도 없었을뿐더러 자신과 가족들의 상처를 파헤치는 고통이 너무 커서 부인 칼로타의 술회에 의하면 "들어갈 때보다 십 년은 늙은 듯한 수척한 모습으로, 때로는 울어서 눈이 빨갛게 부은 채로"작업실에서 나오곤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탈고한 뒤 오닐은 자신의 사후 이십오 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만큼 사적이고 아픈 이야기였던 것이다."p.226

     

    이 대목을 읽으니 더욱 더, 이 작품이 얼마나 유진 오닐의 피눈물로 쓰여진 작품인지.. 와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심정이 정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내 아픈 상처를 그냥 마주하는 것도 힘든데, 이렇게 일일이 인물과 상황 설정까지 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해야 했으니.. 정말 이 작품이 그의 전부를 내 놓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품을 영미희곡에서 제일,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불행했던 가정사를 마찬가지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표현된 인물들이나 상황 조건같은 것들이 꼭 비슷해서가 아니라, 여기에 내재된 그 고통이, 어려서는 그 정체를 몰랐기에 나도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고통을 떠올리게도 하는 것 같았고,

    그것을 이렇게 직접 작품으로 표현된 것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고통을 예술 작품이 대신, 드러내고 표현하고 이렇게 구현한 것을 접하고 나니까.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감정의 수수께끼를 조금은 푼 듯한 느낌이고, 그것을 이 작품이 대신 무어라고 정정하고 드러내보여준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래서 이 작품을 좋아한다.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읽어도 여전히 그 고통이 여실히 전해오는 그런 작품이더라도. 내 인생 최고의 명작이 아닐까 아마도... 유진 오닐이 나와 거의 한 세기 이전의 사람인데도, 이 작품을 쓰는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너무 느껴지는 것이고, 이 작품을 홀로 그 방에서 쓰며 얼마나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을까. 그런 많은 것들이 절절히 느껴지고 그렇다. 이런 것이 진짜 작가와 독자가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공감하고 그런 것 아닐까도 싶다. 그리고 예술 작품으로 우리의 드러나지 못한 고통들을 치유한다는 것도....

     

     

     

    굳이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작품을 잘 모를텐데, 정말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하는. 아니, 이미 영문학사에서 너무나 유명한 대작이긴 하지만. 요즈음 할리우드 영화나 가볍고 흥미진진한 소설 작품 같진 않지만, 정말 그 정수가 깊고 깊은 명작이다. 인생 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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